라틴어 수업(한동일 지음, 2017), 흐름출판
Lectio ⅩⅣ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죽음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경험한 한동일 신부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죽음을 대비하는 삶의 자세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챕터였다.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나는 뜻의 문구입니다.
(중략)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관이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았고, 제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네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중략)
Si vis vitam, para mortem.
(시 비스 비탐, 파라 모르템)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책 본문 151~157 p 발췌
얼마 전 겨울의 끝자락에 거의 다다를 무렵, 대학원 동갑내기 동기의 추모예배에 다녀왔다. 미국에서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부모님이 한국에서도 딸의 지인, 친구들과도 딸을 함께 기리고 싶은 마음에, 미국에서 장례를 마친 뒤 한국에서도 추모예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동기들 중에서도 나랑 동갑인 친구가 이렇게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충격과 서글픈 마음이 생각보다 컸다. 그렇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세상 사람들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저 그 친구가 좀 일찍 갔을 뿐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던지게 되었다.
서양식 문화에 가까운 추모예배라는 것을 난생 처음 드리면서, 그곳에 와 있는 친구의 수많은 지인들, 친구들을 바라보며 문득 나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 친구와 나는 일종의 애증관계였던 것 같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애증이라고 했지만, 한 때 매우 친했고 서로 너무 달라서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떠올리면 아쉽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체념하게 되는 관계라고 해야 되나. 그런 관계였던 친구였는데도 너무나 일찍 가버린 그 아이의 인생이, 그 꽃다운 젊음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많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가 문득 내가 죽었을 때에도 이렇게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언젠가, 어쩌면 예고 없이 찾아올 수도 있는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 생을 ‘잘’ 살아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죽음 앞에 완전히 담담한 사람은 없겠지만 적어도 생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에 ‘잘 살아냈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람 후회 없이 잘 살다갔을 거야’라는 말을 (천국에서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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