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참 속마음을 쉽게 알기 어려운 생명체다. 흔들어대는 낚싯대를 신나게 쫓아다니며 놀다가도, 금새 낚싯대에 질려서 다른 걸 흔들어주지 않으면 반응해주지 않는다. 다른 고양이들 잘 먹는다는 습식 캔을 사와서 줘봐도 특정 타입의 습식이 아니면 먹지 않아서 결국 동네 길고양이들이나 이웃집 고양이에게 캔을 선물한 적도 있다. 참고로 우리 오레오는 그레이비 소스 타입의 습식 캔만 좋아하고, 무스 타입이나 플레이크 타입은 입에 대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건, 오레오는 나를 많이 좋아하는 순둥이라는 사실이다. 나도 가끔 놀랍다. 저렇게 손 내밀고 부르면 오는 고양이는 인스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옆에도 실재하는 고양이였다니. 물론 가끔 내가 자기를 내버려두고 오랫동안 딴짓을 하고 있거나 하면 실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가 오라고 해도 안 올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손을 들어 오라고 했더니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내 옆으로 다가온 오레오를 보니 확실히 이 아이는 나를 좋아하는 게 맞다. 가끔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고양이와 함께 있다보면, 문득 언젠가 이 녀석이 나를 떠났을때의 공허함이 얼마나 클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먼 미래라고 생각하며 애써 그런 부정적인 상상을 떨쳐내지만 세월은 항상 우리의 기대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만 같다. 예기치 못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고.. 그렇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 현재 이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이 작은 아이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누리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
까만 털과 하얀 털이 섞인 턱시도 냥이의 모습이 마치 까만 샌드 사이에 하얀 크림이 들어간 과자 오레오를 생각나게 해서, 오레오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항간에 어떤 썰에 의하면, 반려동물에게 음식 이름을 붙여주면 오래 산다나 뭐라나. 꼭 그런 걸 믿어서 과자 이름을 붙인 건 아니지만, 오레오라는 이름이 왠지 이 녀석과 꼭 어울렸다.
집사야 나 좀 보라냥!
오레오랑 산 지도 벌써 햇수로는 4년차, 만으로는 3년을 넘겼다. 집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대부분 영양 상태도 좋고 위험요인도 많이 줄어 강아지들 마냥 한 20년 가까이도 산다고 한다. 그렇지만 벌써 오레오와 몇 년을 살다보니 왠지 더 세월이 가기전에 이 녀석과 함께 한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싸 발. 끈 절대 놓치지 않을거예요.
그래서 오늘부터 이 블로그 공간에서 육묘일기를 시작해본다. 매일은 어렵겠지만 일상속에서의 귀여운 오레오와의 추억을 자주 한 조각 한 조각씩 남겨놔야지.
백신도 3차까지 맞았고, 집-회사-집-회사가 일상인데 어디서 걸렸는지도 확실치 않아서 깝깝하다.
4월 9일 토요일 아침에 냥님 밥 주려고 7시쯤 눈을 떴는데 두통이 쎄하게 왔다.
그 전날에도 두통이 약하게 왔었는데 요 며칠간 신경을 쓰던 업무 때문에 온 스트레스성 두통이라고 생각했다.
두통약을 한 알 먹고 '다시 자면 괜찮겠지' 하고 누웠다가 11시에 깼더니 두통이 꽤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이상했다. 목도 잠기고... 그날 저녁에 약속이 있었는데, 가기 전에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자가진단 키트를 꺼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코로나가 아닐 줄 알았다... 지난 주에 유독 스트레스가 심한 업무도 하나 있었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환절기에 옷을 얇게 입어서 퇴근길에 몇번을 바들바들 떨면서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몸살이 났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지난주에 회사에서 한 분이 코로나에 확진되긴 했지만, 나는 직후에 한 신속항원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고 열흘 가까이 아무 증상이 없었어서 코로나일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더 충격적이었던 자가진단 결과...
채취한 검체를 똑똑똑똑 떨어뜨리자마자 t자에 선명하게 줄이 생겼다..
이게 무슨 일이야...
곧바로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고, 양성 판정을 받아 약도 처방받아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데 정말 너무 우울했다.. 하필이면 벚꽃이 활짝 핀 주간에 격리를 해야 한다니..
저녁 약속을 취소하는 것도 너무 짜증나고 서러웠다. 한달에 한두번 약속 잡을까말까 하는 중인데...
코로나 상관없이 잘 놀러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집순이마냥 살던 내가 왜...?
여튼 그래서.. 토요일부터 격리생활에 들어갔다.
같이 사는 냥님 외에 동거인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와서 얼마 안 있다가 보건소에서 이렇게 문자가 왔다.
이 문자를 받으니 제대로 실감이 났다.
아 나 코로나 걸렸구나.. 이제 꼼짝없이 격리해야 하는구나...
벚꽃들아 이번 봄은 안녕..
#코로나증상
격리 1, 2일차에는 정말 두통과 오한, 인후통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죽을 것 같았다..
격리 3일차인 오늘, 두통과 오한이 많이 사라졌다. 또 다행히 아직까지는 후각이나 미각 상실도 없고 인후통이 심하긴 하지만 뭔가를 아예 못 삼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몸에 한기가 차는 느낌이 좀 있고, 목이 따끔따끔해서 말을 길게, 그리고 크게 할 수가 없다.
목도 엄청 잠겨서 내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닌 상태...
그나마 쿠팡에서 주문한 스프레이형 프로폴리스를 목에다 뿌리고 나니 통증이 좀 가라앉는 것 같다. 근데 하품하거나 재채기하거나, 침을 삼킬때면 얄짤없이 아프다.
코막힘도 어제에 비하면 좀 줄어든 것 같고..그렇지만 기력이 없어서 아침에 잠시 냥님 밥 챙기고, 약을 먹기 위해 시리얼을 한 그릇 꾸역꾸역 먹은 후에 다시 오후 1시 넘어서까지 쥐죽은 듯이 잤다. 거의 하루종일 잔 것 같은 기분... 인데 또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쓰는 글도 소파에 기대어 자꾸만 어디로 가려는 정줄을 붙잡은 채 겨우겨우 쓰고 있다.. )
#코로나잠복기
사실 나는 잠복기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안된다.. 약한 두통이 생긴 게 검사 하루 전날이었고, 원래 체질상 (그리고 성격상) 스트레스 받거나 잠을 제대로 못자거나 하면 두통과 미열이 올라오곤 했기 때문에... 감염소재로 의심되는 곳이 정황상 딱 한 군데 있긴 한데, 그게 거의 열흘 전이다. 오미크론 잠복기는 1-2일, 길어봤자 3-4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작 증상이 나타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병원에서 오미크론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요즘 확진되면 거의 오미크론이라고 하니.. 그리고 심한 인후통을 동반하는 걸 보아 오미크론이 맞는 것 같다.)
여튼 이제 격리 3일째인데.. 원래 좀 집순이라 격리 자체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벚꽃은 여전히 아쉽다) 사실 잠이 너무 잘와서 (아니면 기력이 빠진건가...) 낮 시간이 금방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파서 쉬는 김에 그동안 제대로 못 잔 잠을 몰아서 자는 것 같기도 하고... (이참에 실컷 자자는 긍정적인 마인드)
격리기간에도 재택근무로 일은 할수 있는데, 일단 내일까지는 휴가를 내고 쭉 쉴 생각이다.
격리 해제된 이후에도 급격한 체력 저하 등 후유증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일단은 몸을 챙기는데에 집중하려고 한다.
같이 사는 냥님은 집사가 말을 많이 못하니까 엄청 심심한 눈치다. 참고로 고양이들에겐 코로나 바이러스가 옮겨가도 무증상이라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냥님과 마주할때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냥.. 내 냥님에게 바이러스가 옮겨간다는 게 참을수가 없어서)
2021년인 올해 여름에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 코로나가 터진 후로 근 2년 간 영화관에 간 적이 없었다. 코로나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영화관을 안 가도 넷플릭스, 왓차 등등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여튼 영화관을 안 가니 원래 개봉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오고 나서야 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별 다섯개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천만 관객 넘어갔을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이 시작되던 시기, 정부군과 시민 반군이 충돌하는 모가디슈 한복판에서 남한과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함께 탈출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전기와 식량이 끊기고, 자국과의 통신도 끊긴 상황에서 남북한이 이념을 넘어 생존을 위해 손을 맞잡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윤석 배우가 연기한 한신성 소말리아 대사의 실제 모델인 강신성 前 소말리아 대사에 따르면, 실제로는 남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함께 지낸 3박 4일 동안 이념으로 인한 충돌 상황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상황에서도 처음에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이념의 갈등이란 얼마나 공고한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이념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 남한 참사관 강대진(조인성 분)과 북한 참사관 태준기(구교환 분) 이다. 북한 대사관 일행들의 전향서를 위조하려는 강대진과 그를 발견한 태준기 간의 몸싸움은 마지막에 남북한 일행이 함께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피신에 성공하며 서로에 대해 애틋해졌을 때의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 중 한 명은 탈출 도중 안타깝게 사망했지만...
마지막에 케냐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서 남북한 일행이 서로 모른 척하고 각자의 케냐 대사관 일행들을 향해 가야 하는 장면에서 분단이라는 현실이 다시금 실감났다. 생사의 기로에서 협력해서 함께 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다시는 인사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니. 구조기에서 내려 서로의 안위를 위해 서로 모른체 해야 하는 한신성 대사와 림용수 대사(허준호 분), 그리고 남북한 일행들의 모습에서 짧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영화 후기 중 소말리아의 상황이 최근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케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전쟁 상황이 민중들의 삶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지켜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평화가 깨졌을 때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알 수 있다.
세계사에서 아프리카 대륙은 강대국들의 야망과 욕심에 의해 수난을 가장 많이 당한 지역 중 하나이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배경인 1991년 이후 소말리아는 현재까지도 내전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되어 있다. '소말리아'라고 하면 '해적', '내전' 같은 단어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한반도도 어쩌면 아프리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힘으로 움직이는 국제정치의 역학 안에서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단이라는 현실을 맞이한 한반도와, 세계 열강에 의해 이용당하고 멋대로 국경선이 그어진 아프리카 대륙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분단과 소말리아의 혼란한 국가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남북한이 낯선 땅에서 마주한 위협에 보여준 동포애, 카체이싱 씬에서는 추격스펙터클한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