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모모 - 토크콘서트, 봄 <영화로 보는 남북, 그리고 분단 이야기 -강철비를 중심으로>
지난 주 금요일(3/27) 평화교육 시민단체 피스모모에서 진행하는 토크콘서트를 다녀왔다. 피스모모에서 살롱 드 모모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토크콘서트는 계절별로 1회씩 열린다. 이번 봄 시즌에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나타나는 남북관계와 분단 이야기를 주제로 토크가 진행되었다.
피스모모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라는 모토로 평화교육을 진행하는 시민단체다. 이전에 일하던 기관에서 진행하는 평화교육을 같이 하던 단체이기도 하고, 아는 분이 지금 여기 속해 계시다고 해서 나도 모르게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 있던 곳이기도 했다. 우연히 행사 참가 신청 링크를 그 ‘아는 분’의 남편 분께서 sns에 공유해놓으신 걸 보고(세상은 정말 좁다), ‘요즘 시간도 많은데 여기나 가볼까?’라는 마음에 덜컥 신청을 하고 다녀왔다. 정우성, 곽도원 주연의 영화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 그리고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게스트로 와서 강철비와 남북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사실 난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참가했다. 신청하고 바로 다음날 가야해서 영화를 미처 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평소 관심사 중 하나였던 남북관계와 영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내용이 베이스로 깔려있어서 토크콘서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무리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영화를 보고 갔으면 등장인물이나 특정 신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이야기나 질문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긴 했다.
영화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과 동국대학교 교수인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이야기 게스트로 참여했고, 영화 강철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 영화가 남북관계를 어떤 식으로 스토리에서 활용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두 분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청중들과의 Q&A 시간도 있었다. 생각보다 토크시간이 길어져서 사실 기억이 다 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행사 뒤에 집에 돌아와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콘서트에서 나눈 이야기가 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부분까지 종합해서 토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포인트 몇 개만 짚어보고자 한다.
1. 현실인식 기반 스토리 (※주의 - 영화 강철비 결말 스포가 있음)
양우석 감독이 영화 강철비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의도를 듣고 ‘정말 치밀한 사람이구나.’ 했다. 웬만한 역사학자, 국제정치학자 못지않은 세계사, 핵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줄줄 읊으며 영화 기획 배경을 설명하는데 잠시 학부 때 국제정치 시간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심지어 명강의..:D) 저 정도는 치밀해야 영화감독을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하튼 박식함과 치밀함이 엄청난 사람이었다.
양우석 감독은 국제정치학자들이 가장 현실가능성이 높다고 꼽는 한반도의 미래 시나리오 네 가지를 제시했다. 네 가지 시나리오는 바로 1.전쟁 / 2.(북한 정권의 붕괴를 예상 결말로 상정한) 경제 제재 / 3.북한의 자발적 비핵화 / 4.남한이 북한의 핵을 공유하여 한반도 전체가 핵무장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분들에게 영화가 이 네 가지 옵션 중 마지막을 결말로 택했다고 들었다. 영화에서 왜 한반도의 핵무장을 결말로 넣었을지, 감독이 그 옵션을 가장 현실가능성이 높거나 긍정적인 결말이라고 여겼던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감독이 생각하는 또 다른 한반도의 시나리오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어쨌든 영화를 현실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일종의 픽션이니까,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좀 더 긍정적이고 희망찬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볼 수는 없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양우석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양우석 감독은 자신은 철저하게 현실인식에 기반을 두고 영화를 기획했고, 영화는 어떤 대답을 던져주기 보다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나 현상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생각해볼 수 있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결코 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이 아니고, 2017년 당시에는 정말 국제정세를 보아 한반도에서 정말 전쟁이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우리 사회가 전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무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 결말을 어떻게든 최대한 긍정적인 쪽으로 끌고 갔는데 괜히 억지스러운 결말로 끝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좀 후회한다는 얘기도 했다. 감독의 기획의도를 알고 나니 영화의 결말에 수긍이 갔다. 한반도가 전쟁가능성이 있는 지역임은 분명 사실이니까. 어쩌면 우리에게 평화 감수성이 가장 필요한 이유는, 굳이 IS 같은 테러단체가 활동하는 지역까지 보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의 정세만 둘러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2. 분단 트라우마
분단은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뼈아픈 상처와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사실 감독의 또 다른 의도는 이 분단 트라우마를 보여주고자 함도 있었다. 이산가족과 같은 인도주의적인 문제에서부터 통일 혹은 현상 유지, 그리고 통일을 바라보는 남한 내의 정치적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서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모르는 실태래 같은 문제를 떡하니 던져 놨다. 유지나 영화평론가와 양우석 감독 모두 짚고 넘어간 ‘분단 트라우마’는 분단 그 자체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누군가에게 분단은 가족과의 생이별, 형제에게 총부리 겨누기와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비극을 상정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분단 상황을 이용해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궁리한다. 양우석 감독은 현재 우리 사회가 철저히 이익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분단과 같은 중차대한 민족의 문제와 아픔까지도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영화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개입하는 여러 국가들의 행위와 결정도 결국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극복하기 위함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3. 영화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 - 젠더감수성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 영화 강철비에 여성의 역할이 보조적으로 혹은 매우 제한적으로 그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양우석 감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외교, 정치 분야에서 아직까지는 여성의 진출이 적고, 본인이 남북관계와 같이 전통적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도 남성이 주도하는 분야를 그려내다 보니 여성의 역할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이건 참 감독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관 중 여성의 비중이 50%를 돌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여전히 대외정책이나 사법, 정치, 경제 내의 주요직에는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이 존재하는데, 철저하게 현실을 그려내고자 하는 양우석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은 그렇지만 자신도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젠더 문제와 관련된 영화 시나리오를 틈틈이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투철한 현실인식을 가진 양우석 감독이 언젠가 영화에서 젠더 문제를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덧) 어쩌다보니 양우석 감독에 초점을 많이 둔 포스팅이 되었는데, 유지나 평론가에 대해서도 느낀 점을 떠올려보자면, 약간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내심 지향하는 캐릭터지만 정작 나 자신이 그렇게 되기는 참 어려운... 평화운동을 지속해왔고,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기에 때로는 국가라는 절대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도 저항하며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을 뿜어내기도 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좀 더 그분의 캐릭터에 가까운 단어일 것 같다. 보통의, 정말 보통의 평범한 나 같은 소시민(?)은 현실을 살아내는 데에 바빠 급급해서 지나치는 일들도 사유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사실 좋아하면서도 내색하기가 쉽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소심한 거북이 주인장은 어떻게 하면 튀지 않으면서도 명예나 지위는 얻고 안정적이면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주로 하는 정말정말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서... 그래도 이런 주제의 토크콘서트가 있으면 좀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관심 가지고 요러케 포스팅도 좀 올려보고.. 이런 관심이라도 꾸준히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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