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도 잘 들어오지 않게 되고, 딱히 글감에 대해서도 생각 정리가 안되는 요즘.

새해라서 설레기보다는 그저 2020년부터 너무나 바쁜 업무의 연장선상에 놓여져 있는 기분이다.  

조만간 마감예정인 보고서 두 개를 앞두고(그리고 2월에 보고서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최근 한 달은 그 두개의 보고서에만 집중해도 모자랐을 것 같은데, 자꾸만 다른 일들이 생겼다. 

예를 들면 해외출장이라던가... (이 코시국에 비행기타고 출장 다녀온 사람 나야 나...)


11월 말부터 2주의 해외 출장, 입국 후 2주 동안의 자가격리 그리고 나홀로 보낸 2020년의 연말. 


덕분에(?) 거의 한 달간 회사 사람들과의 업무 콜 혹은 화상회의로 업무를 해왔다. 사실 코로나가 더욱 심해진 지금도 업무환경은 별반 달라진건 없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자유롭게 사람들을 못 만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걸 요즘 더더욱 느끼고 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최근 일터에서도 번아웃이 와서 더욱 힘이 든다.

마감일이 다가오는 일들이 쌓여있는데 그 와중에 새로운 일이 자꾸 생기고, 그걸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서 잘(?) 해보자"는 건 대체... (말잇못)

나도 내가 아직 업무에 있어서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지만, 일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그저 '업무 프로세스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만 해서 제 시간에 끝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든가.. 예를 들면 밤을 며칠 동안 꼴딱 샌다든지... 

근데 나는 그렇게는 못 사는 인간이라.. 밤을 며칠 새서 제대로 된 퀄리티의 보고서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그런 일은 뭐 앞으로 남은 2주동안 해봐야 알겠지만, 그걸 앞으로도 계속 한다고 생각하면 난 이 바닥에서 도저히 오래 버틸 자신이 없다.. 

여튼 그렇다 요즘 나의 상태는.. 이 글을 쓰고 난 이후에도 아마 보고서 하나를 어떻게든 오늘 70%라도 끝내기 위해 끙끙대고 있을 예정이다. 이런 번아웃 상태에서도, 나머지 두번째 보고서도 끝내기 위해 달려들겠지. 

마음 상태가 예전같지 않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들어와 일단 뭐라도 주저리주저리 써본다. 이 또한 나중에 돌이켜보면 무슨 글감이 또 나올까 하여. 어쩌면 이 정체(停滯)와 우울함의 시기를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발버둥일 수도 있다. 

어쩐지 나사 하나가 빠진듯한, 그래서 자꾸만 삐걱거리는 마음을 다잡아보기 위한 발버둥..

조만간 급한 일들을 좀 마무리하고 나면, 그제서야 신년 계획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아마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분야에 남아있을지, 아니면 진지하게 방향을 틀 준비를 할지. 

방향을 트는 데에도 아마 엄청난 용기와 노력과 약간의 운이 따라줘야 하겠지만, 확신이 드는 방향이 있다면 최대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어떻게든 그쪽으로 가기 위한 플랜을 세우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일단, 보고서를 끝내자. 초안 마감이 D-7, 최종 마감은 D-14니까 일단 달려보자. 

[개인 취향 주의]

최근에 설민석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고대사에 대해 강의한 내용에 오류가 많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설민석의 강사 자질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설민석씨가 어려운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은 뭐, 워낙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인정해야 할듯? 실제로 티비에서 몇번 봤을때 스토리텔링 능력은 뛰어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음... 티비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 '스토리텔링'을 좀 과도하게, 매우 과도한 감동 확장/전달용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나뿐인건지 궁금하다. 지식의 깊이는 둘째치고 약파는 장수 이미지가 너무 셌다..

직접 공무원 학원에서 강의하는 유투브 영상을 보고나니 확실히 대중 매체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긴 하다. 내용 전달도 잘하고 쇼맨쉽도 뛰어나고. 하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는... 나의 취향은 확실히 아닌 걸로. 어쩐지 티비에서 하도 설민석 설민석 할때 사실 나는 몇 번 호기심에 보다가 채널을 돌리곤 했다. 이번 '벌거벗은 세계사'의 강의 중 고대사 내용 오류 논란이 계기가 되어 설민석씨의 강의가 내 취향이 아닌 이유를 몇가지 정리해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수도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좀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까 싶어서 적어본다.

1. 과도한 감동의 확장 혹은 분노의 쓰나미 유도
원래도 한국사를 가르치던 사람인데, 티비에서는 유독 일제시대와 근현대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걸 많이 봤던 것 같다. 몇몇 강연 프로그램에서 주로 광복절 특집, 6.25 특집 등에 나와서 다른 출연자들에게 강의하는 걸 봤다. 일제 시대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건 사실 '울화통이 치미는 사건을 종종 설명한다'는 것의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설명하다보니 이게 참 속이 터지는 일이죠' 하는 것과, '일제가 이러이러했으니 어찌 속이 안 터집니까'라고 하는 건, 미묘하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과 같은 차이가 아닐까. 즉, 설민석씨는 처음부터 모두를 분노에 휩싸이게 만들어서 강의 말미엔 펄쩍 뛰도록 만드는, 그래서 누군가는 눈물이라도 흘리게 하는 아주 극적인 효과를 의도하고 강의 내용과 분위기를 구성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흥미롭게 재미있게 볼 수도 있지만... 글쎄. '역사를 가지고 극을 구성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역사적 사건을 극적인 서사로만 풀어내는 것이(그리고 설민석씨는 거의 모든 티비 강연에서 이런 방식을 차용하는 것 같다) 과연 괜찮은 일일까. 나에게는 사실 이게 굉장히 쎄하게 다가와서 그가 하는 강의를 끝까지 보기가 좀 힘들었다. 오글거리는 느낌도 좀 강했고... 여튼 그래서 설민석씨가 하는 강연 프로그램을 끝까지 본 적이 별로 없다. (방금 전에도 벌거벗은 세계사를 호기심에 보다가 중간에 껐다. 주제는 '난징대학살') 

2. (온라인 강의에서의) 흐름/맥락이 실종된 암기법
최근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수능이나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서 잘 나가는 강사라고 하니까 인강에서는 어떻게 강의하는지 궁금해져서 유투브 강의영상을 찾아봤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암기법은 이런 식이다.

신석기시대 주요 유적지 암기법을 설명하면서,
"'신(석기)' 봉선('봉산 자탑리')이 '부산 동삼동'에 사는데 개그맨 되려고 '서울 암사동'으로 이사와 '양양(오산리)'으로 '온천(금산리)'가요."

신박하긴 신박하다.. [출처: 유투브 '설민석-공무원 한국사 암기 비법 특강']


보자마자 '진짜로 한국사를 이런식으로 외우게 한다고?' 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근현대사까지 커버하면 이런 식으로 외워야 할 항목이 수백개는 될텐데 그걸 언제 다 외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든 생각은 '창작하느라 애썼네'.


개인적으로는 역사 과목을 잘 하기 위해서는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험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그렇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들었던 다른 인강강사의 수업은 역사의 흐름과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시대적인 큰 줄기를 설명하고 나서 디테일한 정보는 스스로 외우라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흐름을 설명하면서 디테일도 빠짐없이 전달했고. (다음 수업시간에 물어봤는데 우물쭈물 대답 못하는 분위기면 한번 더 짚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설민석씨처럼 새로운 문장(?)을 창조하면서 외우게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훨씬 나에게 맞는 방식이었고, 이건 과목 공부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강민성쌤 짱. 갑자기 쌤 수업 듣고 싶다. 150강이 15강처럼 느껴지게 하는 쌤 능력 리스펙..)


어쩌다 보니 설민석씨를 좀 까는 글 처럼 되었는데.. 매체에 나와서 강의/강연을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정당한 비판이 아닐까 한다. 뛰어난 내용 전달 능력은 당연히 인정하고, 학부가 연극영화과였다고 해서 역사 강의를 못할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다학제적인 인재 양성을 논하는 이 시대에 '학부 전공이 A니까 B는 못할거야'라고 단정짓는 것은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가. 그렇지만 강의를 할 때에는, 특히 역사에 대해 가르칠때는 무조건적인 암기보다는 통속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하고 외우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적인 암기와 지엽적인 이해로 습득한 지식은 금방 까먹기 마련이기에... 그리고 본래 자신의 분야가 아닌 세계사에 대해서 강의하는 것은, 뭐 한국사 공부하면서 세계사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으니... 그렇지만 본래 파던 분야도 아니고, 다수의 전문가들이 보기에 기본적인 내용 오류가 없도록 하러면 준비를 더 철저히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티비에 나와서 하는 강의 방식에 대해서 '불호'인 것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사실 매우 궁금하다. '호'이신 분들은 어째서 '호'인지도 궁금하고.

여튼 오늘은 설민석씨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봤다.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여러 매체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과 강의 방식에 대한 의견일 뿐, 사람에 대한 비난이 아니니 악플은 사절하겠고, 토론은 환영이다 :)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다.

언제 한번 영화 보러 갈래요?
손 한 번 줘볼래요? (...) 그냥 한 번 잡아보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서 들었으면 기분이 좋았을법도 했던 그런 말들은,
적어도 당신에게서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빠니까.

그 사람은 지난 겨울, 그러니까 대략 1년 전쯤 내가 어떤 일로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이었고, 흔쾌히 나의 부탁을 들어줬었다. 사례비를 고민하는 나에게 돈은 됐다고 하면서, 대신 나중에 어떤 식사 자리에 동행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받은 호의에 당연히 그렇게 해드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전, 연락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연락이 늦었는데, 이번 주말에 저녁식사 자리에 나올 수 있느냐고. 당연히 이전에 했던 그 약속이라고 생각했고,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제 3자가 오는 자리라고 여겨서 약간은 포멀한 옷을 차려입고 나갔다.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그 제 3자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보니 둘이서 식사를 하자고 부른 것이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어른이 불러주신 자리에, 그것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홱 돌아서 나올 수는 없었으니 한 끼정도 같이 하면서 근황토크나 하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예상대로 최근 들어간 직장 얘기 등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들이 튀어나왔고 난 매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알콜이 약간 들어간 상태였지만 취하지는 않았고 다행히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쑥 솟아오른 혼란은 그의 이상한 말들과 함께 계속 이어졌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려고 한다. 어쨌든 나는 좋게 좋게 웃으면서 그의 제안들을 거절했고 건물 앞에서 헤어진 다음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 정류장으로 내달렸다. 버스에 몸을 싣고 나서야 심장이 쿵쾅거리는게 느껴졌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줬었고, 그 때 그 순간에도 어쩐지 나에게 베풀고 있는 것 같고(생각보다 훨씬 비쌌던 식사비를 결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밥을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깊게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괜찮은 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것은,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스러워 웃음으로 무마하거나, 그 사람의 이상한 말들에 대해 굳이 어떠한 판단은 보류하겠다는 태도로 대응했던 나 자신이다. '제가 왜 당신이랑 영화를 보죠...?'라고 반문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다. 바로 정색하고 그 자리에서 불편함을 표시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다. 이 일을 몇몇 지인에게 털어놓았더니, 한결같이 '미친놈이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나마 주변에서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잘 빠져 나왔다고 해주는 위로를 들으며 혼란스럽고 찝찝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지만 사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물러터졌다고 셀프 채찍질을 하는 걸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트라우마처럼 작동하면서 문득문득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만드는 이 사건을, 이 기억을 남겨놔야겠다고 결심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주변에 털어놓자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며 비슷한 유형의 피해들을 겪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는 직접적으로 성추행을 당하거나 지속적인 성희롱을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문득 되돌아보면, '아, 그게 성희롱이었구나' 싶은 일들이 있다. 주변의 지인들도, 막상 당할 때는 몰랐지만 알고보니 그저 가벼운 농담이 아닌 성희롱이었음을, 때때로는 그것이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이용한 강압이었음을 알게 된 사례가 많았다. 이 포스팅을 작성하며, 나는 앞으로 이런 상황에서 좀 무섭고 불편할 수 있지만, 움츠러들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 본다. 그리고 다시는, 호의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불쾌하고 비윤리적인 언어들을 누군가가 나에게 내뱉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고도.

 

 

내가 최근  몇 년 간 힘들었던 시절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는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나는 생각보다 벅찬 학업 생활에 지쳐있었고, 공부 외에는 경제적인 문제로도 항상 고민이 많았다. 간신히 조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또 다른 고민들이 생겼었다.
 
나름 익명으로 운영하는 나의 블로그에서조차, 이런 문제들을 구구절절 쓴다는 것은 조금 부담이 되는 일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벌써 만 2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몇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알게 되는 이 좁은 세상과 가뜩이나 또 좁은 나의 전공 분야 바닥을 알기에, 대학원에서의 이슈들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오픈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가장 힘들었던 일 몇 가지를 적어본다면, 아무래도 내가 따라가기 벅찬 능력치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좌절감, 그리고 공부를 오래 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금수저.. 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대상으로 금이네, 은이네, 흙이네 하고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렇게 계층을 나누는 단어들이 사회의 계층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느꼈던 나의 좌절감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단어들을 때때로 내 머릿속에 불러오곤 했다. 
 
대학원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게중에는 본인의 학습능력과 공부하는 일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제외하고는 다른 큰 어려움 없이 석사도 하고 박사과정까지 밟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본인이 정말 열심히 노-오력해서 재정적으로는 크게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끝까지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문제는 나는 학업을 지속할 상황적인 여건도 받쳐주지 않았고, 그런 불리한 여건을 극복할 만한 뛰어난 역량도 딱히 없는, 정말 그냥저냥 평범한 석사 후보생 중 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막판에 지도교수를 교체하며, 논문의 방향에 대해서도 우왕좌왕하면서 과연 내가 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남는 것이 있을지,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막막했었다.
 
이미 2학기를 지날 때부터, 석사를 하고 나면 더 많은 길이 열릴 것 같고 진로에 대한 엄청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던 1학기의 꿈같은 기대와 희망들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내가 있는 분야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나면 갈 수 있는 자리 중에 ‘양질의’ 일자리는 많지 않았고, 조건이 조금이라도 더 괜찮거나 좋은 곳들은 경쟁이 치열했으며, 대부분은 ‘고급 계약직’이거나, 일하는 시간은 누구보다 많은데 야근 수당 따위는 통상 임금으로 치는 박봉인 자리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박봉인 자리에서 현재 일을 하고 있다..^^;)
 
증말 노오오오오오력 이라는 것을 하면 박사과정을, 국내든 해외든,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서 여~~~얼심히 공부를 하고, 또 열~~씸히(!) 시간강사 일을 하고 연구를 하면서 결국에는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어른들의 조언(이라고 쓰고...)은, 석사과정에서도 허덕이는 나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았다고, 이제서야 고백 아닌 고백을 쏟아내 본다. 
 
인생의 큰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원 시절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나자 방황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전공 분야의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에서 인턴을 했고, 그 다음에는 공공기관을 가려고 공채 준비를 했는데 마냥 공부만 할 수는 없어서 오직 경제적 활동을 목적으로 일단 되는 대로 첫 번째 직장을 들어갔다.
 
그리고 세 번의 공채 실패,
 
세 번이나 도전했던 공채에서 나는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얻은 것은 첫 번째 관문인 필기시험(보통 1000여 명이 지원하고 100명 정도가 통과)에서는 세 번 모두 통과하면서 나름 ‘내가 공부 머리가 없지는 않구나’라는 위안 정도.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뚫고 올라간 면접에서, 전략의 실패 또는 따라주지 않는 면접관과의 케미 등으로 실패를 맛보고야 말았다. 어리석은 내 탓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를 갈며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밀려난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곳과의 인연은 딱 인턴 때까지였다는 생각이 최근에서야 들었다.
 
공채를 접고 난 후, 또다시 이어진 수많은 면접과 탈락의 결과들. 찬 바람을 맞으며 면접장으로 향할 때마다 ‘이번에는 제발..’, ‘너무 기대하지 말자...’와 같은 생각들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렇게 한동안 잿빛 터널같은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해질 때,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여의치 않을 때 슬럼프는 스멀스멀 찾아오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방황과 연이은 실패로 나의 자존감은 참 많이 낮아져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대학원 시절과 이후의 취업준비 과정을 돌아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기와 깡으로 버텨준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가끔은 관성처럼, 일터에서도 ‘난 이것밖에 못하나?’, ‘남들은 잘하는데 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지’와 같은 생각들로 스스로를 쿡쿡 찌르는 나를 발견한다. 거참,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옥죄고 여전히 부족한 점을 먼저 들여다보는 습관은 어디 가질 않는다. 아마도 일종의 '관성'이 되어 상황이 어느정도 안정된 지금도, 자꾸 나의 폐부를 건드리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한마디씩 툭 던져주고 싶다. "마, 이제 숨 좀 쉬어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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