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중학교 시절의 나에게

키가 작고 소심한 어린 시절의 나야, 안녕? 서울에서 부모님을 따라 광주로 내려가 억센 전라도 사투리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너는 어느새 말투에 조금씩 사투리 억양과 단어가 섞이기 시작했구나. 그렇지만 여전히 쓰기가 좀 어려울거야. 아직 남들이 하는 대화들이 억세게 들리고, 왠지 더 상냥하게 들리는 서울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투가 그립긴 하지? 어차피 성인이 되어 서울로 다시 올라가게 되면 주구장창 서울 말씨들을 듣고 쓰게 될거야.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겉으로는 세게 들리고 가끔은 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사투리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해보길 바라.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에도 너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숨어있을 수 있거든.

중학교에 가서 방과 후 시간에 배우는 재즈댄스, 재밌지만 어렵지?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과 아무래도 결이 많이 다른 너는 그네들과 어울리는 일은 어려워서 좀 외로워하고 있었을거야. 그 친구들이 나쁜 아이들은 아니지만 내성적인 네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관계일거란 생각이 들어. 사실 그런 아이들은, 성격이 많이 밝아지고 꽤 외향적으로 변한 지금의 나도 상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거든. 그러니 너무 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배우는 것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아. 물론 너는 수업에 몰입하면서 매우 잘하고 있어. 선생님도 혼자 묵묵히 연습하는 너를 예뻐하시는 것 같거든. 그리고 너는 춤이 처음이라서 원래도 남들보다는 좀 더 연습을 해야하잖니. ^^ 삼십대 초반이 된 나도 아직 춤을 추지만 여전히 안무 외우는 속도는 더딘 편이란다.

p.s. 립밤을 꾸준히 바르길 바라. 입술 마구 뜯지 말고. 네 입술은 소중하거든.


고등학교 시절의 나에게

고등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순간, 중학교 때 왜 더 공부를 안했지? 라고 후회했지? :)
외고에서의 성적, 그리고 관계에서 오는 좌절감을 맛보고 일반계 학교로 오게 된 너는 아마도 지금이 인생 최대의 힘든 시간이라고 느끼고 있었을 것 같아. 사실 고등학생인 시절의 나에게는 어떤 말을 해야할까, 어떤 격려나 위로나 조언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가족, 친척들, 학교 선생님들, 친구들 등등 주변의 시선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공부도 중요하고 대학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인생은 지금 네가 생각한 것보다 길기 때문에, 장기 레이스를 달린다는 생각으로 지금부터 너무 힘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신 어떤 길을 선택하든 너만의 확신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끝까지, 무엇보다도 즐겁게 갔으면 해. 주변의 기대를 의식하지 말라는 얘기는 꼭 한 번 더 해주고 싶네. 아마 부모님은 네가 좋은 대학을 가서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거고, 외갓집에서도 첫째 손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을거야. 우리 집안 첫째가 전교 몇 등을 했다느니, 어디 명문대를 갔다느니, 그런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들이 분명히 있을거야.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곳을 가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정말이야.


20대의 나에게

원했던 만큼 소위 ‘명문대’를 가지 못해서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렇게 너 자신을 폄하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외부의 어떤 타이틀에 의해서 결정되어 버려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래도 어쨌든 소소한 위로를 하자면 성인이 된 후에 너는 괜찮은 교수님들과 친구들, 여러 지인들을 만나 많은 걸 배우고, 많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어. 그것만으로도 나의 20대는 참 좋았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하곤 해. 그리고 고등학생때와 마찬가지로 인생은 정~말 길다고, 20대는 초반이든 중반이든 후반이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시기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아, 그리고 하나 더. 90년대생인 비슷한 또래의 스타들을 너무 우러러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너는 소위 ‘김연아 신드롬’을 보면서 자라난 세대이지. 어린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만 쳐다보면서, ‘난 언제쯤?’이라는 마음에 항상 전전긍긍하는 네가 짠하면서도 안타까워. 그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처럼 너만의 길을 개척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남자 보는 눈을 좀 키우지 그랬니^^ 이건 지금도 잘 못 하는 일 중 하나라 이하 생략.


30대 초반인 현재의 나에게

막상 서른이 되었을 때에는 20대와 별다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해가 갈수록 점점 초조하긴 하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턴과 이것저것 일을 거쳐, 이제서야 겨우 직업을 제대로 가지고 정착해서 또 많은 것을 배우는 과정에 있잖아. 최근에 한동안은 이사를 하고 가족들과 그동안 도와준 친척들에게서 완전히 독립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몸이 많이 지쳐있었지. 그리고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한동안 불안함과 우울감도 겪었잖아. 코로나 블루가 나에게도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단 말이지.
지금도 나는 더 나은 내 모습, 모든 일을 항상 깔끔하게 해내고,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일 할 수 있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꿈꾸며, 현재는 못나 보이고 부족해보이는 나의 모습을 항상 자책하고 있지. 회사 팀장님 말마따나, ‘제~발 스스로를 너무 쪼지 않으면’ 좋을텐데. 설령 어떤 일을 잘 못해낸다고 해도 그게 내가 다른 모든 일에서도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니까. 10대, 20대의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실은 지금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야.

나는 네가 너 자신을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결국은 나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모든 시절의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 그래서 자신감도 좀 더 가졌으면 좋겠고. 때로는 미움받을 용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용기도 발휘했으면 좋겠어. 우리, 어제보다 내일은 한 뼘만큼이라도 더 행복해지자.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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