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취향 주의]
최근에 설민석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고대사에 대해 강의한 내용에 오류가 많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설민석의 강사 자질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설민석씨가 어려운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은 뭐, 워낙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인정해야 할듯? 실제로 티비에서 몇번 봤을때 스토리텔링 능력은 뛰어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음... 티비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 '스토리텔링'을 좀 과도하게, 매우 과도한 감동 확장/전달용으로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나뿐인건지 궁금하다. 지식의 깊이는 둘째치고 약파는 장수 이미지가 너무 셌다..
직접 공무원 학원에서 강의하는 유투브 영상을 보고나니 확실히 대중 매체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긴 하다. 내용 전달도 잘하고 쇼맨쉽도 뛰어나고. 하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서는... 나의 취향은 확실히 아닌 걸로. 어쩐지 티비에서 하도 설민석 설민석 할때 사실 나는 몇 번 호기심에 보다가 채널을 돌리곤 했다. 이번 '벌거벗은 세계사'의 강의 중 고대사 내용 오류 논란이 계기가 되어 설민석씨의 강의가 내 취향이 아닌 이유를 몇가지 정리해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수도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혹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좀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까 싶어서 적어본다.
1. 과도한 감동의 확장 혹은 분노의 쓰나미 유도
원래도 한국사를 가르치던 사람인데, 티비에서는 유독 일제시대와 근현대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걸 많이 봤던 것 같다. 몇몇 강연 프로그램에서 주로 광복절 특집, 6.25 특집 등에 나와서 다른 출연자들에게 강의하는 걸 봤다. 일제 시대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건 사실 '울화통이 치미는 사건을 종종 설명한다'는 것의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설명하다보니 이게 참 속이 터지는 일이죠' 하는 것과, '일제가 이러이러했으니 어찌 속이 안 터집니까'라고 하는 건, 미묘하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과 같은 차이가 아닐까. 즉, 설민석씨는 처음부터 모두를 분노에 휩싸이게 만들어서 강의 말미엔 펄쩍 뛰도록 만드는, 그래서 누군가는 눈물이라도 흘리게 하는 아주 극적인 효과를 의도하고 강의 내용과 분위기를 구성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흥미롭게 재미있게 볼 수도 있지만... 글쎄. '역사를 가지고 극을 구성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역사적 사건을 극적인 서사로만 풀어내는 것이(그리고 설민석씨는 거의 모든 티비 강연에서 이런 방식을 차용하는 것 같다) 과연 괜찮은 일일까. 나에게는 사실 이게 굉장히 쎄하게 다가와서 그가 하는 강의를 끝까지 보기가 좀 힘들었다. 오글거리는 느낌도 좀 강했고... 여튼 그래서 설민석씨가 하는 강연 프로그램을 끝까지 본 적이 별로 없다. (방금 전에도 벌거벗은 세계사를 호기심에 보다가 중간에 껐다. 주제는 '난징대학살')
2. (온라인 강의에서의) 흐름/맥락이 실종된 암기법
최근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수능이나 공무원 한국사 시험에서 잘 나가는 강사라고 하니까 인강에서는 어떻게 강의하는지 궁금해져서 유투브 강의영상을 찾아봤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암기법은 이런 식이다.
신석기시대 주요 유적지 암기법을 설명하면서,
"'신(석기)' 봉선('봉산 자탑리')이 '부산 동삼동'에 사는데 개그맨 되려고 '서울 암사동'으로 이사와 '양양(오산리)'으로 '온천(금산리)'가요."

보자마자 '진짜로 한국사를 이런식으로 외우게 한다고?' 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근현대사까지 커버하면 이런 식으로 외워야 할 항목이 수백개는 될텐데 그걸 언제 다 외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든 생각은 '창작하느라 애썼네'.
개인적으로는 역사 과목을 잘 하기 위해서는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험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그렇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들었던 다른 인강강사의 수업은 역사의 흐름과 이해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시대적인 큰 줄기를 설명하고 나서 디테일한 정보는 스스로 외우라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흐름을 설명하면서 디테일도 빠짐없이 전달했고. (다음 수업시간에 물어봤는데 우물쭈물 대답 못하는 분위기면 한번 더 짚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설민석씨처럼 새로운 문장(?)을 창조하면서 외우게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훨씬 나에게 맞는 방식이었고, 이건 과목 공부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강민성쌤 짱. 갑자기 쌤 수업 듣고 싶다. 150강이 15강처럼 느껴지게 하는 쌤 능력 리스펙..)
어쩌다 보니 설민석씨를 좀 까는 글 처럼 되었는데.. 매체에 나와서 강의/강연을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정당한 비판이 아닐까 한다. 뛰어난 내용 전달 능력은 당연히 인정하고, 학부가 연극영화과였다고 해서 역사 강의를 못할 것이라는 것도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다학제적인 인재 양성을 논하는 이 시대에 '학부 전공이 A니까 B는 못할거야'라고 단정짓는 것은 얼마나 협소한 생각인가. 그렇지만 강의를 할 때에는, 특히 역사에 대해 가르칠때는 무조건적인 암기보다는 통속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하고 외우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무조건적인 암기와 지엽적인 이해로 습득한 지식은 금방 까먹기 마련이기에... 그리고 본래 자신의 분야가 아닌 세계사에 대해서 강의하는 것은, 뭐 한국사 공부하면서 세계사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도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으니... 그렇지만 본래 파던 분야도 아니고, 다수의 전문가들이 보기에 기본적인 내용 오류가 없도록 하러면 준비를 더 철저히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티비에 나와서 하는 강의 방식에 대해서 '불호'인 것은.. 그냥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사실 매우 궁금하다. '호'이신 분들은 어째서 '호'인지도 궁금하고.
여튼 오늘은 설민석씨에 대한 생각을 좀 정리해 봤다. 인간적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여러 매체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과 강의 방식에 대한 의견일 뿐, 사람에 대한 비난이 아니니 악플은 사절하겠고, 토론은 환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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